
솔직히 이 영화를 다시 볼 생각이 없었습니다. 30년이 된 영화를 굳이 꺼내 보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다시 틀었다가, 끝나고 한참을 멍하니 않아 있었습니다. 1994년 개봉작이 2024년에도 이렇게 살아있다는게 제가 예상하지 못한 지점이었습니다.
* 왜 이 영화는 30년이 지나도 회자되는가?
서사 구조(narrative structure) 측면에서 프레스트 검프는 꽤 독측한 방식을 택합니다. 여기서 서사 구조란 이야기를 어떤 순서와 방식으로 풀어나가느냐, 즉 이야기의 뼈대를 말합니다. 대부분의 영화가 갈등과 해결을 중심으로 긴장감을 쌓는 반면, 이 영화는 그냥 한 사람의 일생을 따라갑니다. 목표도 없고, 거창한 반전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이 영화가 미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배경으로 삼으면서도, 그 사건들을 해석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베트남 전쟁, 워터게이트 스캔들, 핑퐁 외교. 포레스트는 그 한가운데 있지만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무지함이 오히려 관객에게 자유를 줍니다. 각자의 시선으로 그 시대를 읽을 수 있으니까요.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는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 즉 주인공이 이야기를 통해 내면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포레스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사람입니다. 변하는 건 그가 아니라 그를 보는 관객 쪽입니다. 저도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다른 걸 느끼는데, 그게 바로 이 영화가 계속 살아남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 순함이 왜 이렇게 강하게 와닿는가
포레스트의 IQ는 75입니다. 지능지수(IQ)란 표준화된 검사를 통해 인지 능력을 수치화한 지표로, 100이 평균입니다. 영화 속에서도 그는 스스로 "저는 똑똑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이겁니다. "나는 포레스트보다 훨씬 똑똑한데, 왜 이렇게 단순한 걸 못 하고 있을까." 약속을 미루고, 연락을 뒤로 밀고,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넘기는 것. 포레스트는 그런 계산을 하지 않습니다. 친구 버바가 힘들다고 하면 달려갑니다. 제니를 사랑하면 끝까지 사랑합니다. 새우잡이를 하겠다고 했으면 폭풍우 속에서도 배를 띄웁니다. 머리가 좋다는 게 오히려 핑계를 만드는 데 쓰이고 있던 건 아닐까, 반성이 생기는 지점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 과부하(cognitive overload)라고 부릅니다.인지 과부하란 사람이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을 초과했을 때 오히려 판단력이 저하되고 행동이 지연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더 많은 변수를 고려하다가 정작 행동을 못 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죠. 포레스트는 그 덫에 걸리지 않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능력이 없으니까요. 그런데그게 결과적으로 그를 더 인간답게 만듭니다.
* 결과보다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의 힘
영화 비평 분야에서 포레스트 검프는 종종 성장 서사(bildungsroman)의 변형으로 분류됩니다. 빌둥스로만이란 주인공이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서사 장르를 뜻하는 독일어 용어로,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이 대표적입니다. 다만 포레스트의 경우, 그가 내면적으로 성장하기보다 그의 성실한 태도 자체가 서사를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조금 다릅니다.
포레스트 검프가 말해주는 핵심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성공은 전략이 아니라 눈앞의 일에 집중하는 것에서 온다
- 사랑은 조건이 아니라 끝까지 함께하는 태도다
- 약속은 상황이 바뀌어도 지키는 것이다
- 달리고 싶으면 그냥 달린다. 이유 필요 없다
저도 처음엔 이게 너무 단순한 메시지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생각해보면, 그 단순한것들을 제대로 하고 있는 사람이 주변에 얼마나 있는지 떠올리게 됩니다. 저 포함해서요.
* 지금 잘 안 풀린다면, 이 영화가 작은 실마리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를 추천하는 분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위로가 됐다"는 겁니다. 처음엔 그 말이 좀 추상적으로 들렸는데, 직접 경험해보니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잘 안 풀리는 시기에 이 영화가 위로가 되는 이유는, 포레스트가 대단한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잘 안 풀리는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새우잡이 배가 허리케인에 쑥대밭이 됐는데도 다음 날 또 바다에 나갑니다. 그 장면에서 제가 예상 밖으로 많이 흔들렸습니다. 정서 조절(emotional regulation) 측면에서도 이 영화는 꽤 효과적인 매개체로 작동합니다. 정서 조절이란 자신의 감정 상태를 인식하고 상황에 맞게 조절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영화를 통해 대리 경험을 하고 감정을 간접적으로 처리하는 것, 즉 카타르시스를 통한 정서 해소는 오래전부터 연구된 현상입니다. 영화 치료(cinematherapy) 분야에서는 이런 효과를 활용해 실제 심리 상담에도 적용합니다([출처: 미국상담학회] 포레스트 검프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한 남자의 이야기를 보여줄 뿐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면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지금 내 삶에 제대로 임하고 있는가, 내가 소중히 여겨야 할 사람에게 연락은 하고 있는가. 정답을 주지 않는 영화가 오히려 더 오래 남습니다. 포레스트 검프가 30년을 버텨온 이유입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거나 오래전에 봤다면,지금 다시 한 번 틀어보시길 권합니다. 보고 난 뒤의 그 멍한 시간이, 의외로 꽤 괜찮은 시간이 될 겁니다.